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수리남 조봉행 실화 6부작 후기
하정우 황정민 박해수 첸진 유현석 예원 열연… 변기태 역 조우진 캐릭터 백미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가 오랜만 선전했다. 카터, 서울대작전 등 지난해부터 계속 선보인 한국 콘텐츠들이 준 실망감이 더 커서 이 6부작 드라마가 더 돋보였는지 모른다. 소셜 미디어 페친들 혹평 일색이면 정말 꽝인 것들 많다. 음식처럼 영화나 드라마도 주관적이다, 라는 일반의 인식이 무색하게 사람들 ‘아니다’ 비판하는 것들 진짜 그런 경우 많았다. 평가가 획일화된다는 우려도 있지만 혹평 일색, 정말 못 만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후자라면, 한국 콘텐츠 산업 측면에서도 불행한 일이다.
다행히 이 6부작 드라마 '수리남'은 호평 일색이었다. 먼저 본 사람들 이런 저런 찬사들 페이스북에, 트위터에 늘어놓았더라. 주말, 6회에 ‘불과’하다는 데 용기를 얻어 짬을 내서 이틀에 걸쳐 나눠 봤다. 4일 추석 연휴인 한국과 달리 여기 한가위 휴가 없는 일상 주말, 하루 몰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손에 땀을 쥐게 한다’는 표현이 있다. ‘심장 쫄깃하다’는 말도 한다. 이 드라마 ‘수리남’이 그랬다. 강인구(하정우)가 사업 말아먹고 수리남에 들어갔을 때부터 이곳 대표 마약왕과 얽혀 사건 꼬이고 풀릴 듯 다시 엉키는 매 지점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건, 사건과 사건이 부딪히는 매 순간•장면마다 손에 땀을 쥐고, 심장 쫄깃했다. 매 회가 그랬다. 잠깐 심호흡 위해 커피를 탄다든지, 과자를 꺼내온다든지 딴짓 피운 적이 많았다. 저 책략이 들키면 어쩌나 그만큼 아슬아슬 마음 졸이는 씬들이 많았다. 이 드라마의 미덕이다.
연출의 힘이다. 윤종빈 감독이 극본에 참여하고 연출을 맡았다. 윤 감독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군도: 민란의 시대(2014), ‘공작’(2018) 등을 통해 선 굵은 액션과 묵직한 주제의 경쾌한 전개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수리남의 한국인 마약왕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힘에 재기 발랄한 연출을 버무려 기대한 만큼 효과를 봤다.
영화를 더 실화답게 한 것은 등장인물들 공이 특히 컸다. 내로라하는 배우들 기대 이상의 연기력으로 극본에 살을 입혔다.
실존인물이라는 수리남 마약왕 전요환 역 황정민의 이 방면 연기는 익히 봐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소름 돋는다. 허술한 웃음 이면의 잔인함, 이 연기를 이만큼 해내는 이는 어쩌면 그가 톱이다. 팬티 바람에 가운 걸친 모습이 그만큼 보스다운 배우 또 있던가.
누구보다 돋보인 건 변기태 역할 조우진이다. 코믹한 사장 비서로만 알고 있던 그의 재발견이다. 그가 정체를 드러내는 그 순간은 이 6부작 드라마에서 가장 강렬하고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올해 본 가장 멋진 반전. 그가 중국 갱들과 벌이는 살육전 또한 이 영화 혹은 윤종빈 액션의 백미다. 이 사람, 이 처절한 연기력을 어떻게 윤 감독은 밑바닥에서부터 끌어냈을까. 두 사람에게 존경을 보낸다. 벌써 변기태를 주연으로 스핀오프 하라는 주문이 많다. 그 사연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새로 6부작 가능하겠다.
죽음이 허무했지만 중국 갱 두목 장첸을 소화한 첸진도 두드러졌다. 한마디로 ‘잘생긴 연기’를 하는 배우더라. 그 이름이 갖는 무게만큼 영화의 맷집을 다졌다. ‘목사님’ 변호사 데이빗 박을 맡은 유현석도 장첸처럼 ‘한 방’에 간다. 그가 국정원 은닉 요원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편집의 힘이다.
짧지만 눈에 확 들어온 배우는 가수 출신 예원이다. 어디서 봤더라 했는데 그였다. “언니, 언니는 내가 밉죠” 이 대사 한 마디로 본인은 확 뜨고, 상대 이태임은 매장당했던 그 사건으로 새겨진 인물. 속옷 차림으로 열연했는데, 이름값에는 못 미쳤다는 느낌.
호평 일색이지만 이 영화도 손꼽을 단점은 있다. 주인공 강인구가 너무 ‘비현실적’ 캐릭터라는 것이다. 누구 앞에서도 그는 ‘쫄지 안’으며, 어떤 역경과 위협도 결국 그를 비켜 간다. 하물며 최종회 ‘목사님’ 쫓는 차량 질주 신, 바짝 붙은 그의 차에 적들이 연신 총을 갈기는데, 그는 요리조리 운전만 잘한다. 총알도 그를 피한다는 소리. (이에 대해서는 내가 존경하는 오동진 평론가 지적으로 갈음) 게다가 국정원 팀장 최창호(박해수)와의 캐미 또한 코믹해선 안될 개그적 요소가 다분해 옥에 티.
이 영화로 인해 크게 손해를 본 주체들도 있다. 일단 수리남. 이게 브라질 위 작은 나라라는 건 기실 이 영화 땜 알았다. ‘그런 나라가 있어?’ 나도 그중 하나였다. 관광도 가능하다는데, 이렇게 이미지 메이킹해놓고 ‘무서워’ 누가 갈 수 있을까 싶다. 또 하나는 기독교. 조요환 신분이 공식적으로는 ‘목사’다. 사람을 죽이고, 마약을 넘기면서 ‘할렐루야’를 판다. 현실을 도외시하는 광신의 일단도 묘사했다. 기독교인들, 근데 의외로 조용하다.
영화에서 전요환은 체포 후 ‘10년형을 받고 항소한’ 것으로 나온다. 미국령인 푸에르토리코에 마약 풀어 DEA(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 마약단속국)까지 출동해 ‘엄벌’을 설레발 떨더니 마약 밀래, 살인,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된 그에게 고작 10년? (실제 조봉행은 2009년 체포됐고, 2011년 징역 10년을 구형받았다고. 형기를 마치고 나와 다시 수리남으로 들어가 모아둔 돈으로 ‘조용히’ 살고 있다는데, 그 이상 정확한 조봉행 근황은 알려진 바 없다.)
그럼, 10년만 살고 나온 전요환이 강인구를 내버려 둘까. 자기를 파멸로 이끈 그에게 이를 갈면, 한국에 있는 그의 가족도 위험할 텐데. 당연히 드는 질문. 영화는 다소 은유이자 상징으로 ‘그럴 일 없을 것’이라고 마무리한다. 거기에 쓰인 게 ‘박찬호 사인 야구공’. ‘목사님’의 유일한 진짜를 강인구에게 줬다, 그런 대사.(더 말하면 스포)
이 드라마 ‘수리남’ 재밌다. 근데 주변 누구도 ‘수리남 가보고싶다’ 이런 사람 없다. 대통령도 저렇게 막 묘사했는데, 그런 게 당연. 수리남 입장에선 득일까, 실일까. 조봉행은 이 드라마를 봤을까. 그랬다면 뭐라 했을까. 넷플릭스 미국 ‘오늘 많이 본 시리즈’ 7위. 생각보다 치고 못 올라간다.
*덧말: 이 영화 촬영지 상당부분이 제주도란다. 제작진의 승리다.
*덧말2: 수리남 수도는 ‘파라마리보’다.